소리가 보이고 맛까지 보는 사람?! "전세계 4%"
By 이승아
2018-02-07 17:38:30 6323


냄새를 눈으로 보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사고를 겪은 이후로 이렇게 후각을 시각으로 느끼는 일종의 '공감각(synesthesia)' 능력을 가지게 된 겁니다. 상상 속 이야기 같은데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존재해왔습니다.


냄새를 보는 소녀 출처:sbs


“엄마, 저 크고 검은 소리는 뭐에요?” 


책 <소리가 보이는 사람들>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사격장에서 울린 ‘탕’소리를 듣자 아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이후 귀뚜라미가 우는 어느 날, 에드거가 또 묻습니다. 


“엄마, 저 작고 하얀소리는 뭐에요?”


엄마가 귀뚜라미 소리라고 답하자 에드거가 만족하지 못했는지 다시 묻습니다. “아니 그 갈색 소리 말고 작은 하얀색 소리요.” 일반적인 소리를 내는 귀뚜라미와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귀뚜라미가 함께 울고 있었던 겁니다. 1922년 <american journal of psychology>에 발표된 논문에 등장한 만 3년 반 된 아이 에드거 커티스가 엄마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소리에서 색깔을 느끼거나 혹은 색에서 소리를 느끼고, 까만 글씨로 된 글자와 숫자에서 색깔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등의 감각을 일컬어 '공감각(synesthesia)'이라고 합니다. 


소리에서 색이 느껴져요. 출처:shutterstock


책 <소리가 보이는 사람들>의 저자 제이미 워드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기존 감각에 다른 감각이 ‘추가’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플루트 소리에 색깔이 보이는 거죠. 색이 소리를 완전히 대체하지 않습니다. 색이 소리와 공존합니다. 


그런데 공감각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를 “소리가 들리는데 색이 보이네?”라고 추가적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감각이 언제나 한꺼번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공감각을 느끼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4% 정도라고 합니다.


흑백 글자가 컬러로 보여요


Q는 무슨 색이에요? Q는 Q색이죠! 출처:tyden


“저는 흑백으로 읽고 컬러로 생각해요. 예를 들어 Scotland라는 단어는 제눈에 흑백으로 보이지만, 머리에서는 컬러로 느껴져요. 단어의 전체적인 느낌에 색깔을 부여해줘요. 스코틀랜드는 반짝이는 흰색이에요.” 그녀가 공감각에 관련한 라디오를 듣다가 알파벳 중 가장 밝게 느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Q라는 철자였는데요. '그게 무슨 색이지?' 라고 스스로 묻고 처음 떠오른 답변은 “Q는 Q색이지!”였다고 합니다. 스스로 답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색을 다시 찾아봤는데 굳이 따지자면 강렬한 분홍색이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색인지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이런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감각에 맞게 아이의 이름을 짓고, 배우자를 고르기도 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공감각자 샤론은 아들 이름을 고를 때 ‘노란색’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자신과 남편의 이름 모두 노란색이기 때문에 아들 이름의 ‘색’이 안 맞으면 이방인 같아서 도무지 불가능했다고 하네요.


책에 따르면 공감각자가 느끼는 이 색깔은 아주 정확하고, 시간이 흘러도 바뀌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불현듯 느끼는게 아니라는 거죠.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생긴 겁니다. 그렇다고 본래 글자가 어떤 색으로 종이에 쓰여졌는지 모르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공감각은 추가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보이는 색과 느껴지는 색 두 가지가 한꺼번에 존재하는거죠. 자신이 느끼는 글자의 색이 일종의 ‘내면의 스크린’ 위에 있거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허공을 떠다닌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소리를 들으면 맛이 혀에서 느껴진다?! 출처: shutterstock


맛있는 소리?!


소리에서 맛을 보는 공감각도 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영국 공감각협회 회장 제임스 워너튼은 소리에서 맛을 느낍니다. 어떠한 맛이 '상상'되는 게 아니라 실제 입에서 그 맛이 실제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는 어떤 소리를 들을 때마다 특히 주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단어로 들을 때마다 어떠한 맛과 질감이 그 단어에 딸려 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려견이 짖는 소리를 들을 땐 커스터드 소스 맛과 질감이 나고, “좋아한다(like)”라는 뜻의 단어를 들으면 요거트 맛이 난다고 합니다. 그가 모자이크 사이언스(mosaic science)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소리마다 각기 다른 맛과 질감이 있다고 합니다. 


쌍둥이라도 느끼는 맛은 달라요! 출처:pixabay


이 공감각은 유전으로 되물림 된다고 합니다. 공감각자의 자녀는 공감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책에 같은 종류의 공감각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모두 알파벳에서 특정한 색깔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다가, 20대 초반에 들어서야 엄마가 자신의 감각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쌍둥이 자매가 같은 공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러나 이 쌍둥이가 느끼는 색은 다릅니다. 재클린은 A를 빨갛게, 메리는 밝은 초록색으로 느낍니다. 메리는 자신의 눈에 A가 초록색으로 보이는데 언니 재클린은 이를 빨갛게 느낀다는 사실이 상상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 글자가 무슨 색인지를 두고 가끔 다투기도 한다고 하네요.


공감각 원인 설명


영국 공감각협회 회장 제임스 워너튼은 공감각이 새롭게 생겨난 게 아니라 남아있는 거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원래 태어났을 때는 후각, 청각, 시각 등의 감각이 서로 연결돼 있다가 성장하면서 감각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시기가 온다는 건데요. 몇몇은 이 연결 고리가 다 끊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어 공감각을 느끼는 거죠.


세상의 색이 소리로 들려. 출처:vrroom


후천적으로 공감각이 생겨난 사례를 기록한 연구도 있습니다. 영국 TV 프로듀서로 일하던 바네사 포터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72시간만에 시각을 잃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 뒤 서서히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색이 보이면서도 들리는 공감각을 느끼게 됐다고 합니다. 공감각이 전혀 없다가 어느 순간 생겨난 거죠. 


그녀에 따르면 이런 후천적 공감각은 생의 어느 시기든 찾아올 수 있다고 합니다. 원인은 다양합니다. 강력한 환각제, 뇌 손상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바네사 포터의 경우처럼 시력을 잃었을 때 나타나기도 하죠. 그녀는 시력을 많이 회복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몇몇 색은 예전처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승아 에디터(singavhihi@scientist.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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