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YES"라 하면 "NO"하기 힘든 이유
By 이승아
2018-01-08 19:58:03 5035

문제입니다. 1 더하기 1의 답은 뭘까요? 당연히 2라고 생각하시겠죠. '창문'이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진정한 아재. 다른 사람이 3아니야? 라고 말해도 2가 정답이라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커다란 방에 100명의 사람이 모여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3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답을 바꾸시는 분, 안 바꾸시는 분이 있겠지만 일말의 흔들림도 없으실 분은 아마도 얼마 없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내가 맞는 것 같아도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하면 왠지 나도 모르게 정답을 바꾸게 됩니다. 수학에 약하거나, 귀가 얇아서가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흉내내는 사회적 원자이기 때문이죠. 


애시의 실험. 왼쪽 막대기와 길이가 같은 건 오른쪽 셋 중 무엇일까요? 출처:wikimedia commons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얼마나 쉽게 받는지 증명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1952년 미국 필라델피아 스워스모어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실험입니다. 실험 참가자는 위 그림처럼 직선이 그려진 한 카드와 누가봐도 길이가 명백하게 다른 세 줄이 그려진 카드 한 장을 받게 됩니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이 세 가지 직선 A,B,C 중 어떤 줄이 다른 카드 속 한 줄과 같은 길이인지 묻는 겁니다. 정답은 사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죠. C가 얼추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길이가 다릅니다.


이 실험에는 한 가지 속임수가 있습니다. 실험 지원자 중 애시와 미리 짜고 들어온 가짜 지원자가 있던 겁니다. 애시는 실험에서 가짜 지원자들이 큰 목소리로 답을 말하게 했습니다. 정답을 말할 때도 있지만 가짜 지원자들 모두가 똑같이 틀린 답을 말할 때도 있었는데요. 이렇게 모두 틀린 답을 말하는 걸 듣고 난 진짜 지원자는 어색하게 웃거나, 눈을 비볐습니다. 카드를 노려보다가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걸 포기하고 다수가 선택한 '틀린' 답을 말했다고 합니다. 


마크 뷰캐넌의 책 <사회적 원자>에 따르면 애시는 이렇게 순응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원인을 교육 방법이나 가치관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런 경향은 단순히 당시의 교육과 가치관에 국한된 게 아닌 듯 보입니다. 훨씬 더 오래된 생물학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레고리 번스의 실험. 출처:에머리 대학교


2005년 애틀랜타 에머리 대학교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의 실험에서 생물학적 변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대답을 모방해 다시 대답할 때 실제로 뇌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 실험은 겉보기에 다른 두 가지 입체도형을 주고 두 가지가 진짜로 다른지, 아니면 같은 도형을 다른 각도에서 본건지 맞혀보는 겁니다. 애시의 실험보다 조금 어려워졌죠? 애시의 실험처럼 이 실험 참가자 중에 미리 짜고 들어온 가짜 배우들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판단할 때는 언제나 정답을 이야기했지만, 가짜 지원자들이 틀린 답을 내놓자 지원자의 40% 정도가 자신의 대답을 틀린 답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빨갛게 표시된 부분이 두정엽중간고랑. 출처:wikimedia commons


흥미로운 건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연구진은 지원자가 도형을 바르게 인지했지만, 다수의 의견을 따라 답을 바꿀 때 뇌의 활동을 MRI 영상으로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공간지각에 관련된 두정엽중간고랑에서 뇌활동이 가장 활발했다고 합니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전두엽이 아니라 공간지각에 필요한 영역이 많이 쓰였다는 말인데요.


이는 지원자가 도형을 바르게 알아봤지만 의식적으로 궁리해서, 집단의 의견을 전략적으로 따른 게 아니라 집단의 말에 따라서 도형의 인지 '자체'를 다르게 했다는 겁니다. 연구진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 정말 달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수의 선택에도 'My Way'한 사람들


그럼 다수의 선택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답을 그대로 주장한 사람들의 뇌는 어떨까요? 이들의 뇌 활동은 주로 감정에 관여하는 곳에서 관찰됐다고 합니다. 자신이 집단과 다른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정답이 맞는지 틀렸는지 머리를 굴리기 보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집단에서 벗어나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집단과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감정의 동요가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믿는 선택을 한 거죠.


누가 밀었냐고! 출처:fineartamerica


펭귄 같은 인간?!


위 실험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함께 곱씹어 볼 비유가 있습니다. 책 <사회적 원자>의 저자 마크 뷰캐넌은 책에서 인간을 펭귄 사회에 비유합니다. 펭귄은 사냥을 나갈 때 바다에 어느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들기만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물 밑에 범고래 등 펭귄의 천적이 있기 때문에 물 속이 안전한지 누군가 확인해주길 바라는 거죠. 서로 눈치(?)만 보다가 무리 중 어떤 펭귄 하나가 뛰어들어 아무일도 없으면 그제서야 나머지 펭귄들이 사냥을 시작합니다. 저자는 이를 ‘범고래 룰렛’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도 펭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온전히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모방은 개인과 집단 모두의 뛰어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모방의 영향력은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모방이 규칙적인 패턴을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씩 밝혀내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승아 에디터(singavhihi@scientist.town)

이웃집과학자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