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맞으면 타인 감정 읽기 어려워?!
By 이승아
2017-11-30 11:06:04 2226

수능 끝나고 '이곳' 가시는 분들 꽤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성형외과입니다. 코를 높이거나 쌍꺼풀을 만드는 수술도 유명하지만 요즘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시술이 있죠. 보톡스입니다. 


보톡스입니다. 출처:엘러간


'독으로 근육 마비'


보톡스(Botox)는 미국의 엘러간(Allergan.Inc)사에서 제조한 주름 개선용 주사제 브랜드입니다. 보툴리눔 독소 A형이 상품화돼 만들어진 약제입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학정보에 따라 정확히 말하자면 보툴리눔 독소 시술법(Botulinum toxin therap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보툴리눔 독소가 해당 근육을 마비시키는데요. 이 방법으로 얼굴 떨림이나 눈꺼풀 경련 등을 치료합니다. 주름 치료, 사각턱 교정술 등 미용 목적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보툴리눔 독소를 주사로 해당 부위에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보톡스 맞으면 타인 감정 파악 어려워?


그런데 <과학의 위안 : 강석기의 과학카페> 책에 따르면 보톡스를 맞으면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문장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내 얼굴에 보톡스를 맞아 내가 얼굴 표정을 잘 못 지어서 나를 보는 상대방이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보톡스를 맞은 내가 '상대방'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 일까요? 우선 보톡스의 시작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툴리눔 톡신?


보툴리눔 '톡신(toxin)'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건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소입니다. <과학의 위안 : 강석기의 과학카페> 책에 따르면 이 독소는 1820년 독일 의사 저스티누스 케르너(Justinus Kerner)가 소시지를 먹고 탈이 난 사람들의 사례를 보고하면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당시 케르너는 환자들의 증상이 운동신경계가 마비된 결과라는 걸 파악했습니다. 어떤 원리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독소가 신경계를 마비시킨다면 신경계의 과도한 흥분으로 인한 질병을 고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짐작했다고 합니다. 


원래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으로'만' 여겨졌습니다. 출처:flickr


이후 독일의 세균학자 에밀 반 에르멘겜(Emile van Ermengem)이 1897년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넘이라는 세균이 이 독소를 만든다는 사실 밝혀냈습니다. 이 세균이 '보톨리움톡신'이라는 독소를 만드는 거죠.


이 세균에 의해 오염된 식품을 먹으면 보툴리움 톡신이 소장에서 혈관을 타고 들어가 근육의 신경계 말단에 침투합니다. 그러곤 아세틸 콜린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파괴합니다. 신경 전달 물질이 파괴되니 신경 신호가 전달되지 않아 근육 마비됩니다. 심장이나 호흡기 근육에 마비가 와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 독이 '약물'로 적용된 건 1970년대 미국 안과의사들이 사시를 치료하면서 입니다. 사시는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을 조율할 수 없어 발생하는 질환인데요. 안구를 지나치게 당기는 근육에 이 독소를 미량 주입하면 정상으로 돌아와 증상이 완화되는 거죠. 다양한 근육계 이상 질환에 보톨리눔 톡신이 쓰였는데 이 중 하나가 안검 경련이라는, 눈 주위 근육이 과도하게 활동해 눈꺼풀이 자꾸 닫히는 질병입니다. 


아니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주름이 없어졌네? 출처:netdoctor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작용'을 발견합니다. 1990년 대 초 의사들이 근육 활동을 줄이려 보툴리눔 톡신을 주사했는데 많은 환자들의 눈가 잔주름이 없어진 겁니다. 이후 이 보툴리눔 톡신이 눈이나 미간 세로주름에 관여하는 근육 등 표정에 쓰이는 근육 주름을 펴준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2002년에는 미 식품의약국이 보톡스 주사를 승인하기에 이릅니다.


미묘한 감정 표현 파악 어려워져


부작용에서 시작된 주름 치료제 보톡스. 그런데 보톡스 주사를 맞은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을 겪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6년 8월 독성학 분야 학술지 <톡시콘(Toxicon)>에 이탈리아 고등연구국제대학 연구자들이 "보톡스 주사를 맞은 사람이 타인의 말이나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읽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Deeper than skin deep – The effect of botulinum toxin-A on emotion processing>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출처:maxpixel


연구자들은 미간과 눈가 근육에 보톡스 주사를 맞기로한 여성 11명을 대상으로 감정 상태를 표시하는 인지 심리테스트를 수술 전후로 나눠 진행해 비교했습니다. <과학의 위안 : 강석기의 과학카페> 책에 따르면 이 테스트는 슬픔 또는 행복과 관련된 문장이나 얼굴 표정을 보여주고 감정 상태가 어떠한지 파악해 표시하는 건데요. 


예를 들자면 모니터에서 '당신 친구가 불치병을 진단받았다'처럼 명백하게 슬픈 문장이나 '당신은 자신이 친구의 기분을 낫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와 같이 약간 슬픈 문장을 보고 감정 상태를 판단해 표시하는 겁니다. 얼굴 표정도 매우 슬픈 표정-약간 슬픈 표정, 약간 행복한 표정-매우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고 감정상태를 표시하게 했습니다. 보톡스 주사를 맞기 전, 주사를 맞고 난 후 2주 뒤에 각각 동일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동일인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전후로 같은 문장, 같은 표정을 보고도 감정상태 평가에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명백한 슬픔이나 행복을 평가하는 데 차이가 없었지만 약간 슬프거나, 감정이 약간만 실린 표정을 접했을 때 그 평가에 미묘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제대로 구분을 못한 거죠. 보톡스 주사를 맞고 난 후에 약간 슬픈 문장, 약간 슬픈 표정의 감정상태를 그 이전 평가보다 중성에 더 가깝게 판단했습니다. 또한, 약간 슬프거나 기쁜 상태의 얼굴 표정을 보고 감정 상태를 평가하는데 시간도 더 많이 걸렸습니다.


비밀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보톡스 주사를 맞은 건 난데 왜 상대방의 말이나 표정에 실린 미묘한 감정을 읽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연구자들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심리현상으로 이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의 논문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접근과 학문간 융합>에 등장하는 인지심리학자인 윌슨(M. Wilson)의 연구에 따르면 체화된 인지란 결국 마음이, 인지가 몸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고 합니다. 책 <과학의 위안 : 강석기의 과학카페>에서도 우리 몸의 감각, 행동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라는 설명을 찾을 수 있는데요.


우리가 슬픈 얼굴을 보고 '슬프다'고 인지하게 되는 과정에는 나도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짓는, 얼굴 표정의 피드백이 이뤄집니다. 이때 상대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책에 이 체화된 인지를 뒷받침하는 실험이 등장하는데요. 


펜을 이로 물으면 웃는 표정(좌) 입술로 물면 화난 표정(우)이 되죠. 출처:Quentin Gronau/Flickr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펜을 입술로 고정하게 해 약간 화난 표정을 만들고, 다른 한 그룹은 이로 물게해 웃는 표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만화를 보고 평가했는데요. 펜을 이로 물어 웃는 표정으로 본 그룹이 만화가 더 재미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펜을 입술로 고정한 그룹은 재미있는 내용을 봐도 근육이 웃음을 지을 수 없는 상태이고, 때문에 표정 근육에서 피드백이 오지 않아 뇌가 '덜' 재미있다고 느낀거죠. 


즉 보톡스를 맞으면 얼굴 표정 근육이 피드백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지 못하는 겁니다. 슬퍼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쓰이는 근육이나 웃을 때 관여하는 근육(눈둘레근)에 보톡스 주사를 맞으면 슬픔이나 행복감에 관련된 자극을 접했을 때 표정 근육이 제대로 피드백을 못하는 거죠. 너무 슬프거나, 매우 기뻐하는 모습처럼 명백한 감정을 느낄 때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애매하게 슬퍼하거나 약간만 기뻐하는 등 미묘한 감정선을 표출할 때는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죠.


연구자들은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명백한 감정보다는 미묘한 말, 표정의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보톡스 주사의 인지심리학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승아 에디터(singavhihi@scientist.town)

이웃집과학자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