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열등감’에서도 나온다?!
By 이웃집편집장
2017-11-10 10:42:34 2249

원제 : '열폭'도 창의적으로?


열등감과 창의성 간의 관계


창의성이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전 정부의 경제 정책기조는 ‘창조경제’고, 어느 부서의 명칭은 ‘미래창조과학부’였다. 창의성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제법 흔하다. 서점가의 자기계발서들을 둘러보면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은 책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또 어떤가. 사원들, 학생들의 창의성을 길러주자고 열심이다. 심지어 요즘은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대신해가고 있는 듯도 싶다. 이렇듯 나라 곳곳에서 창의성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창의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만으로는 창의적인 생각도, 창의적인 결과물도 나오지 않는다. 창의성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무언가는 기존의 것과 달라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무작정 달라서도 안 된다. 다르되, 경쟁력이 있게 ‘잘’ 달라야 한다. 


그런데 어떤 다름이 그러한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사실 창의성만큼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허구한 날 창의성에 관한 강연을 듣고, 책을 사 보고 해도 바로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창의적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하라는 것은 너무 많은데,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창의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풍부한 독서와 사색, 현실을 비틀어보기, 환경의 변화, 타인과의 협력과 토의 등 다소 진부한 답을 내어놓고 싶지는 않다. 그것들이 창의성과 무관함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창의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정작 내어놓은 대답이 창의적이지 않다면, 그것만한 아이러니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에 기반한, 창의성의 원천과 관련된 재미있는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창의성이란 개인의 ‘열등감’으로부터도 나올 수 있다.



타인과의 비교가 무엇보다 열등감을 부추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 재력이 뛰어난 사람, 능력이 우수한 사람과의 비교는 우리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우울한 감정이 들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심리적 전략들을 사용한다. 외모가 뛰어난 것은 한순간이라거나,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부모의 덕으로 재력을 가졌을 뿐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등 비교 대상을 은근히 폄하하려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다. 조금 더 건설적인 전략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비교 대상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대상을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는 경우다. 비교 대상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성형 수술이나 다이어트를 하고, 일에 몰입해서 돈도 벌고 능력을 인정받아 비교 우위 자체를 없애거나 역전시키려는 시도다. 즉, 열등감을 성장을 위한 자극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한편 이들 전략 외에 열등감을 무마시키려는 또 다른 전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차별화의 욕구다. 가령 비록 상대보다 외모는 못났고, 가진 것은 없어도 적어도 나는 상대가 (아마) 가지고 있지 못할 여타 다른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차별화를 통해 상대와 나 사이의 직접적 비교가 불가능하도록 만들거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을 내세워 스스로가 비교 우위를 차지하려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어느 개인의 창의성이란 바로 이 열등감에 대처하는 차별화 전략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분명히 주장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상대로부터 열등감을 느낄 때 그러한 자신의 장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사실 그것은 아직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열등감에 근거해 창의성이 발현하는 시점은 바로, 비교 우위에 있는 상대방보다 지금 현재 내가 우월할 수 있는 요소가 없을 때다. 상대는 가지고 있지 못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요소를 지금부터 ‘새롭게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외모가 뛰어난 것도, 학교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게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하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내 존재감이 잊히는 일은 잦았다. 그렇다고 해서 외모를 잘 가꿀 자신도,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끌어올릴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선택했던 전략은 바로 ‘차별화’였다. 기존의 요소들로 당장 우위에 설 수 없다면 나만의 독창적인 장점들, 특징들을 만들어서 존재감을 피력하기로 했던 것이다. 시작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그러한 ‘차별화의 욕구’는 어느덧 습관이 되었고 나의 삶을 꽤 독창적으로 꾸려올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해온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창의적인 성과물들을 만들어냈느냐는 차치하더라도.



결국 그렇다. 때로는 지극히 개인 내면의 심리적 욕구가 창의성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함에 있어 어찌 항상 거창한 명분이 있어야만 하는가. 그런 시대적 강박이야말로 정말 ‘창의적이지 않다’고 보여진다.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스스로가 창의적이고 싶었던 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장삼이사로 남으면 열등감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움을 느꼈고, 그들 가운데 비교 우위에 설 자신이 없었다. 지금이야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나는 당시 ‘살아남기 위해’ 창의성을 선택했었던 것 같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뭔가 대단한 것을 해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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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회 심리학 강사(yonghheo@gmail.com)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yonghheo/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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