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을 누르자 달려오던 황소가 멈췄다
By 이승아
2017-11-06 10:37:04 2404

영상 주소 : https://youtu.be/23pXqY3X6c8


스페인의 투우는 성난 황소와 투우사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경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겁도 없이 한 사람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섭니다. 이날 투우에 처음 나선다는데요. 투우에 쓰는 물레타(흔드는 붉은 천)까지 들고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한 걸까요? 황소의 뿔에 받히면 죽기 십상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물레타를 든 저 사람이 겁도 없이 흔들어댑니다. 성난 황소가 달려갑니다. 


이야아아아....압? 


그런데! 돌진하던 황소가 이내 그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방향을 바꾼 후 총총 되돌아갑니다. 투우가 처음이라더니 혹시 전설의 투우사이거나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초능력자는 아닐까요? 


이 투우 실력의 이 비밀은 왼손에 든 리모컨에 있었습니다. 방금 돌진한 황소의 뇌엔 리모컨으로 황소를 원격제어 할 수 있도록 전극을 심어놓았습니다.


이 무모한 남자, 누구?


리모컨을 들고 황소 앞에 나선 신경과학자 호세 델가도. 바로 이분입니다. 출처: topsecretwriters


다소 황당하기도 한 행동을 한 이 사람은 예일대학교의 신경과학자 호세 델가도입니다. 그는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해서 인간과 동물 행동에 대해 많은 걸 알아내고 싶어했습니다. 뇌에 전기 자극을 줘 원숭이가 하품을 하고, 고양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 전기 자극이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토대를 이해하는 핵심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원리는 뇌 미상핵 자극


1963년의 어느 봄날에 그는 황소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소의 머리엔 며칠 전 전극을 심어놓았는데요.


사람 뇌의 미상핵(빨간 부분)입니다. 출처:wikemedia commons


학술지 <Neuropsychopharmacology>에 따르면 이 전극이 심긴 곳은 뇌의 미상핵(caudate nucleus)이라고 합니다. 미치오카쿠 박사의 책 <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에 따르면 이 미상핵은 움직임을 제어하는 부위입니다. 이미 델가도가 이 방법으로 원숭이 무리의 위계 질서를 인위적으로 바꾼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서열 1위 원숭이의 미상핵에 전극을 삽입해 적절한 충격을 가했더니 공격적인 성향이 줄었고, 서열 2위가 반란을 일으켜 우두머리가 됐습니다. 그 후 원숭이 뇌에 또 다른 충격을 가했더니 갑자기 예전처럼 공격성을 되찾아 새 우두머리를 몰아내고 다시 서열 1위를 탈환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호세 델가도와 황소 실험. 출처:뉴욕타임즈/skewsme


델가도의 이 실험은 2년 후 <뉴욕타임스>에 소개됩니다. 책에 따르면 기사가 실린 이후 그는 해마다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편지의 발신자는 자신의 생각을 델가도가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죠. 마치 전기 자극을 줘 황소의 행동을 제어한 것처럼 자신을 통제하는 리모컨이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델가도의 이런 행적은 당시 우리나라에도 보도됐습니다. <매일경제> 1968년 2월 14일 지면에 "腦(뇌)의無電支配容易(무전지배용역) 간질병에 이미 実施(실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예일 대학 생리학 교수 호세 델가도 박사는 사람의 뇌를 무전으로 조종하여 그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13일 뉴욕 주의학협회연례총회에서 말했다"며 큰 병원에서는 전극을 뇌에 꽂아 전기자극을 주는 치료 방법이 간질병을 비롯한 여러 신경성 질환을 고치는데 쓰이고 있다는 델가도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델가도 평가 갈려


그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갈립니다. 당시 그는 말 그대로 '미친 과학자' 혹은 '뇌의 토머스 에디슨'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더 행복하고, 덜 파괴적이며, 더 균형잡힌 인간'이 되게 해주는 기술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심리학적 문명화' 사회에 대한 예언자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전기자극이 심리학적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말 할 단계는 아직 아닌 상황입니다.


다만 이런 전기 자극은 현재 '뇌심부자극술'이라는 이름으로 파킨슨 병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떨림 현상을 갖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영화 <킹스맨> 교회 전투 장면 via GIPHY


영화 <킹스맨> 1편에 뇌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변해 서로를 죽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엄마마저 자신의 딸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아이가 있는 화장실 문을 열려고 거침없이 칼을 내리꽂죠. 당시 델가도를 비판하던 사람들은 뇌를 자극해 행동을 통제하는 일이 인간 전체를 마음대로 제어하는 일로 이어질까 걱정했습니다. 마치 영화 <킹스맨>의 이 장면처럼 말입니다.


그는 비판자들에게 지식이 나쁜게 아니라 악용하는 사람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간질 발작을 컴퓨터로 알아내고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정체성을 위협하는가?"라고 묻습니다. 또 "뇌 기능 이상으로 공격 행동을 보이는 환자를 정신질환 범죄자를 수용하는 감옥에 가두는 게 정체성을 보호하는 일인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승아 에디터(singavhihi@scientist.town)

이웃집과학자 명예의 전당